
러시아군의 ‘게란’ 자폭 드론. 뉴시스
“러시아, 北에 미사일·잠수함·드론 기술 제공”
부다노프 국장이 인터뷰에서 언급한 북·러 군사협력 중 가장 충격적인 대목은 러시아가 최근 대량생산 중인 장거리 자폭 드론 기술이 북한에 넘어갔다는 내용이다. 그는 “(러시아와 북한이) 북한 땅에서 가르피야(Garpyia)와 게란(Geran) 유형 무인기를 생산할 수 있도록 관련 능력을 구축하는 합의를 했다”며 “이는 남북한 군사 균형에 분명히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경고했다.우크라이나군 정보 책임자가 언급한 두 종류의 무인기는 모두 장거리 자폭 드론이다. 러시아가 이란의 샤히드(Shahed)-136을 바탕으로 제작한 모델이며, 그중 특히 주목할 것은 게란 계열 드론이다. 최근 러시아군은 하루 200~300대의 게란 드론을 우크라이나 측으로 날려 보내고 있다. 샤히드-136을 복제해 중국·러시아산 부품을 섞어 개량한 게란-2가 주력이다. 러시아는 2023년 2000~2500대의 샤히드-136을 이란에서 수입해 사용하기 시작했다. 해당 드론 가격이 대당 2만 달러(약 2700만 원) 정도로 ‘가성비’가 좋다는 호평이 쏟아지자 러시아는 ‘게란-2’라는 이름으로 국산화했다. 원형인 샤히드-136은 최대 시속 185㎞에 비행거리 2500㎞로 50㎏ 탄두를 탑재할 수 있다. 게란-2는 사거리를 절반 이하로 줄인 대신 탄두 중량을 100㎏ 이상으로 늘려 파괴력을 키웠다. 현재 러시아는 매달 2000대 정도의 게란-2를 생산하고 있다. 구조가 워낙 단순하고 생산성이 뛰어나 빠른 시일 내 매달 5000대 이상을 생산할 전망이다.
우크라이나군과 서방 정보당국에 따르면 러시아의 게란-2 기본형은 대당 가격이 1만 달러(약 1350만 원)에 불과하고 변종도 다양하다. 샤히드-136과 유사한 게란-2 기본형은 상용 위성항법장치와 연동되는 자동비행제어칩이 탑재된 모습으로 대량생산되고 있다. 전략 표적 타격이 목표인 개량형은 텅스텐 파편 탄두나 폭발성 자탄을 싣고 반(反)재밍 장비까지 갖춘 8만 달러(약 1억 원)짜리 풀옵션 버전이다. 6월 7일 러시아의 키이우 공습에선 터보제트 엔진을 장착해 시속 600㎞까지 속도를 올린 게란-3 모델이 처음 발견됐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이 지난해 11월 14일 자폭 드론 성능시험을 현지 지도하고 있다. 뉴스1
러시아 드론 공세에 지친 우크라이나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접경지역은 물론, 벨라루스와 크림반도 등 우크라이나와 가까운 거의 모든 지역으로 게란 드론을 날리고 있다. 당초 로켓 부스터를 끼운 뒤 전용 발사대에서만 발사해야 했지만 최근 픽업트럭을 개조한 발사차량도 등장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동·북·남쪽에서 동시에 매일 적게는 수십 대, 많게는 수백 대 게란을 날리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군 기지와 무기 생산시설, 관공서는 물론 민가마저 연이어 피격돼 엄청난 인적·물적 피해가 발생했다.사실 게란-2 같은 드론은 일단 포착만 하면 격추하기 쉬운 공중 표적이다. 내구력이 약해서 소총이나 기관총 정도로도 어렵지 않게 격추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 경찰이 AK74 소총으로 게란-2 격추에 성공한 사례가 있고, 제1차 세계대전 때 활약하던 맥심 기관총이 게란-2 방어에 널리 쓰이는 실정이다. 지난 2년 동안 이 드론을 상대로 치열한 사투를 벌인 우크라이나군의 노하우도 무시할 수 없다. 최근 러시아군 공습이 있을 때마다 우크라이나군의 게란 드론 격추 성공률은 약 90%인 것으로 알려졌다.

우크라이나군 F-16 전투기는 최근 러시아의 드론 위협에 따른 잦은 출동으로 추락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뉴시스
일견 효율적인 전술 같지만 실상은 다르다. 하루에도 여러 차례 사방에서 드론이 날아오다 보니 이에 대응하는 우크라이나군 전투기·헬기 기체와 조종사의 피로도가 한계치를 넘어섰다. 우크라이나군 F-16 전투기의 경우 공대공 교전에서 격추된 것보다 드론 요격 작전을 수행하다가 피로 누적으로 추락한 사례가 더 많을 정도다. 날아드는 드론이 워낙 많다 보니 서방 각국이 제공한 공대공·지대공미사일 재고는 언제나 부족한 상황이다. 그나마 가성비 좋은 대응체계인 기동방공단은 하루 수백㎞를 달리며 임무를 수행하고 있어 병력은 물론, 차량도 퍼지고 있다. 러시아가 게란 생산량을 한 달 5000대 이상으로 늘리면 우크라이나의 대공 방어망이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일반 방공 시스템으로는 드론 포착 어려워
우크라이나가 직면한 러시아군 드론 공세의 심각성은 한국에도 남 일이 아니다. 부다노프 국장은 앞선 미국 매체와 인터뷰에서 “북한이 샤히드를 보유하면 남한 어느 곳이든 잠재적으로 엄청난 규모로 타격할 수 있게 된다. 남한 방공망을 무력화한 뒤 다른 무기의 연쇄 공격을 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의 경고대로 샤히드·게란 드론은 가격이 싸고 생산성이 높아 대량생산 및 투입이 용이한 무기다. 사방이 탁 트인 우크라이나 대평원과 달리 산악 지형과 고층 건물이 즐비한 한반도 전장에선 탐지조차 어렵다. 게란-2 계열 드론의 레이더 반사 면적(RCS)은 매우 작아서 일반 방공 시스템으로는 포착하기 어렵다. 이 드론은 길이 3.5m, 폭 2.5m에 불과하다. 지대공 무기체계에서 널리 쓰이는 C(4~8GHz), X(12~18GHz)나 Ku(12~18GHz)밴드 대역 레이더에는 작은 새 크기인 0.0001㎡ 정도의 RCS로 표시된다고 한다. 조준은 고사하고 탐지·추적도 어려운 것이다.이미 북한 드론은 대한민국 영공을 휘젓고 다니고 청와대 상공까지 침투한 바 있다. 2014년 경기 파주에 추락한 북한 무인기(길이 1.43m, 폭 1.92m)는 대낮에 청와대와 서울 시내를 촬영하고 돌아가던 중 엔진 고장으로 추락했다. 한국군은 이 드론이 대통령 머리 위를 날아다닌 사실도, 사진을 찍고 유유히 북한으로 돌아가다가 추락한 것도 민간인이 신고하기 전까지는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 여론의 뭇매를 맞은 한국군은 저고도 방공망을 정비하겠다고 밝혔지만 2022년 12월 북한 무인기 5대가 서울 상공을 훑고 지나갈 때도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소형 드론 방어에는 이렇다 할 왕도가 없다. 360도 모든 방향을 동시에 감시할 수 있는 고성능 다면(多面) 고정형 위상배열레이더, 이 레이더와 연동된 방공 시스템을 촘촘하게 배치하는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도 2014년 북한 무인기 사건 직후 이스라엘제 4면 고정형 위상배열레이더인 RPS-42 도입이 추진되긴 했다. 그러나 국산 저고도 레이더를 자체 개발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막혀 대량 도입이 좌절됐다. RPS-42 대신 도입이 결정된 국산 국지방공레이더는 한 번에 한 방향만 볼 수 있는 모델이다. 이런 한계 때문에 2022년 12월 북한 무인기 침투 때 표적 추적에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군 천호 대공포. 뉴스1
천호 대공포, 北 드론 공격 막을 수 있나
RPS-42는 미국 육군과 해병대를 비롯해 세계 각국 군대가 채택한 무기다. 유럽 선진국도 이와 유사한 무기체계를 도입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드론 대응에 부적합한 성능의 레이더를 국산이라는 이유로 대량 도입하고 있다. 이 레이더에 의존하는 ‘눈 없는 대공포’ 천호가 차기 대공포로 대량 도입되는 상황이다. 대당 25억 원 수준인 천호는 자체 레이더가 없다. 그 대신 이른바 방공자동화(C2A)로 표적 정보를 받은 후 전자광학조준장비로 조준해 기관포를 쏜다. 국지방공레이더가 적 드론을 탐지하지 못하면 천호도 무용지물이 된다는 얘기다.군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고자 존재한다. 드론이라는 새로운 안보 위협이 등장했다면 방공 시스템도 그것에 맞게 발 빠르게 변화해야 한다. 국방부와 군이 드론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경우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 국민은 북한판 샤히드의 위협에 고스란히 노출될 수밖에 없다.